[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60] "'살무손 비행기'에 맞먹는 시속 100㎞ 열차 등장" ´″°³∂♬ 세상잡담

1935년 7월 3일 오전 7시 35분, 경성역발 유선형 열차에서 조선일보 신경순(申敬淳) 특파원은 조선에 출현한 '지상의 비행기'를 취재하고 있었다. 시속 100㎞로 달리는 신형 열차의 시운전 취재에 나선 것. 도술(道術)로 거리를 단축하는 듯 '완연축지(宛然縮地)'의 쾌속력으로 달린 열차는, '아메리카 퍼시픽' 회사가 만든 '파시'형 기관차가 견인한 임시열차였다.

신 특파원은 "차내에는 진동계 속도계 등 각가지 세게문명의 정예를 모은 시험긔게를 싯고 아츰햇발조차 선명한 경성역을 출발하엿다. 경쾌한 체형을 가진 긔차는 실로 지상의 '비난추니(매)'라 할만한 것이었다"며, "한시간 일백킬로 실로 그 속력은 '살무손' 비행기의 속력 한시간 일백이삼십키로와 거의 맛먹는 터"라고 송고했다. '경부선 초스피드 시운전 열차'는 예정 시각보다 삼분 늦은 오후 1시 38분, 부산역에 도착했다. 걸린 시간은 6시간 3분(75㎞/h)이었다.(1935년 7월 4일자)




이튿날(7월 5일)자 조선일보 팔면봉은, '경성, 부산간을 육시간에 스피드업, 열흘에 한양에 오든 노인네의 감회, 여하(如何)'라고 적었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첫 철도 개통 당시 시속 20㎞, 1905년 1월 1일 경부선 첫 운행 때 영등포에서 출발한 기차가 '주행야숙(晝行夜宿/낮엔 달리고 밤엔 잠)하며 30시간 걸려 부산 초량에 도착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당시 일제의 대륙침략이 가속화될 때였다. 부산에서 만주 봉천에 이르는 국제 특급열차 '히까리(光)'와 '노조미(望み·희망)'노선 등을 운영하던 일제는, 이를 신경(新京)까지 연장운행하면서 시간 단축을 위해 '히까리' 노선의 경성, 천안, 사리원 등의 정차를 금지했다.(1934년 4월 18일자) 이 때문에 경성에서 '노조미' 노선의 혼잡이 극심했다.(1935년 1월 20일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전체 특급열차 노선을 조정하고, 경부선에초특급 급행열차 '아까쯔끼(曉·새벽)' 노선을 신설, 12월 1일부터 운행키로 했다.(1936년 11월 20일자) '아까쯔끼' 노선 시운전에선 경성 부산 간 450㎞를 6시간 45분(시속 67㎞)만에 내달렸다.(1936년 11월 21일자)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일제는 '부산서 아침 먹고 저녁은 (만주)안동에서'라는 구호를 내걸고, '아까쯔끼' 노선을 만주 안동현(安東縣)까지 연장키로 했다.(1937년 1월 23일자) 너무 장거리 노선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평균시속 칠십키로로써 경성 부산을 제비가티 빨리 다름질하고 잇는 조선철도의 자랑꺼리 '아까쯔끼'는 1938년 4월, 대수술에 들어갔다. "차체가 너무 흔들려 세수깐에서 낫도 잘 씨츨수 업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1938년 4월 14일자)

해방후 특급 열차는 '해방자'부터 '통일호' '무궁화호' '재건호' '새마을호' 등으로 이어졌고, 2004년에는 고속철(KTX)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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